원전 발전량이 0이 된 뒤에도, 대만 바다와 육지엔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쬈다. ‘마지막 원전’ 마안산 2호기 발전량(약 900㎿)의 일곱 배가 넘는 ‘녹색 전기’(6400㎿)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원전이 멈추면 정전이 되고 전기값이 폭등한다”는 ‘탈원전 괴담’이 무색하게 태양광과 풍력은 원자력이 빠진 전력 공백을 안정적으로 채우고 있었다. 대만이 자랑하는 반도체산업 역시 재생에너지가 많은 지역에 공장을 증설하는 등 ‘새 판 짜기’에 나섰다. 동부해오름 대만에 ‘탈원전’은 단지 ‘원전을 멈춰 세웠다’는 수동적인 정책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공급과 산업을 결합시켜 ‘미래로 나아간다’는 능동적인 정책인 것이다. 농어촌 마을에 원전 2기급 재생에너지가 ‘뚝딱’ 22일 타이베이에서 차로 1시간30분 달려 도착한 먀오리현의 ‘허우룽 희망봉’에는 관광객 수십명이 해안가에 줄지어 선 증권포털사이트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분주했다. 안경이 벗겨질 정도로 강한 바람(연평균 초속 8.9m)에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가득한 푸른 바다는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 포모사1·2 해상풍력단지는 정부의 탈원전 및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에 맞춰 추진된 것으로, 1단지의 경우 풍황 계측(2015년)에서 완공·운영(2019년)까지 불과 4주식천재 년밖에 안 걸렸다. 1·2단지 전체의 발전용량(649㎿)은, 탈원전 정책으로 2018년 가장 먼저 폐쇄된 진산 1호기의 설비용량(636㎿)을 넘어선다. 허우룽 해변 인근 16만㎡ 크기의 저수지에는 10㎿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수상 태양광’ 설비가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흡수하고 있었다. 대만 정부는 유휴부지와 농지, 어업지 등에 발전설비황금성릴게임 설치를 유도하는 태양광 진흥 정책도 펼쳤는데, 그 결과 먀오리현에만 382㎿ 규모의 태양광이 설치됐다. ‘먀오리산’ 재생에너지는 10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이처럼 풍부한 재생에너지는 대만이 자랑하는 반도체 공장들을 지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파워칩(PSMC)이 먀오리현에 현재까지 1천억황금성온라인 대만달러(약 4조6천억원)를 투자해 12인치 웨이퍼를 월 5만장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공장을 최근 준공한 게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도 먀오리현에 반도체 칩을 연결·조립하는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많은 전력과 물을 필요로 하는 에너지 집약 산업인데, 아예 반도체 공장들이 먀오리현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에 들어서는 것이다. ‘늦어도 2040년까지 ‘알이(RE)100’(재생에너지로만 100% 전력을 공급하는 캠페인)을 달성한다’는 대만 반도체 기업들의 자신감은 이처럼 빠르게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공급에 기대고 있다.
전국에 분산된 공장…에너지와 산업이 ‘착붙’ 대만 정부는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환경에 맞춰 산업 전략을 짜고 있다. 대만 전체 전력 10% 이상을 쓰는 반도체 산업 등 주요 기업들을 재생에너지 단지 주변으로 분산시켜 자리 잡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티에스엠시의 경우, 북부 신주현과 중부 타이중시, 남부 타이난시 등으로 공장들을 분산해 각각 근처에 있는 장화·중넝 등 해상풍력단지로부터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아 알이100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덴마크 기업 외르스테드가 장화시 연안에 조성한 920㎿(대형 원전 1기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전력을 20년간 통째로 구입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대만 먀오리현의 허우룽 저수지에 수상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태양광 에너지가 가장 풍부한 남부 지역에도 반도체 설비가 늘고 있다. 티에스엠시의 경우 본사가 있는 북부 신주 단지와 함께 남부 가오슝 공장에서도 최첨단 2나노미터(1억분의 2m) 칩을 생산하는 공정을 만들고 있다. 글로벌 기업 유엠시(UMC)도 남부 타이난시에 공장 2곳을 증설해 운영 중이다. 가오슝, 타이난, 핑둥 등 남부 지역은 대만에서 태양광 효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현재 이곳엔 대만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5594㎿ 규모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집중되어 있다. 일각에선 흐리거나 바람이 없는 날엔 전력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간헐성’ 문제를 지적하지만, 대만전력공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설비를 확대하고 인근 가스발전소로부터의 전기 조달 체계도 갖추는 등 이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다고 밝혔다.
린쯔룬 국립대만대 교수가 국립대만대 도서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영식 사진기자 제공
오늘날 에너지 정책에선 무엇보다 ‘분산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인데, 대만은 탈원전 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분산형 에너지·산업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며 경기도 용인·기흥·화성 등 수도권에 공장을 집중시키고 대규모 가스발전소(3천㎿)로 전력 조달을 하려는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린쯔룬 국립대만대 교수(지구환경정치학)는 한겨레와 만나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용지 지원 및 세금 감면 등 유인책으로 전력 수요가 많은 공장·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이 일자리 분산과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고,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에 필요한 알이100 달성에서 (한국보다) 앞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먀오리·타이베이/옥기원 기자 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