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등 전공책 1200여 권 골라과학 특화도서관에 선뜻 기증“전공자·일반인 누구나 읽기 기대”“책 읽기는 AI 시대 필요 기본 능력” 강동구청(구청장 이수희)이 상일동에 지난 5월14일 문을 연 강동숲속도서관은 여느 도서관과 달리 특별하다. 숲을 조망하며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휴식처여서 그렇고, 과학이란 주제에 특화된 도서관이어서 더욱 그렇다. 서울&은 이 ‘과학 특화도서관’에 정체성을 잔뜩 불어넣은 사람을 만났다. 이곳에 평생 모아온 전공서적 실수가없으신 등 1200여 권을 기증하고 홍보대사를 자처한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다. 최재천 교수는 “퇴임을 앞두고 평생 모은 책의 미래를 고민했는데 학생 몇 명만이 읽기보다 일반 시민과 청소년 등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생각해 이 도서관에 기증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자신의 개인 서재를 진화와 유전에 관한 한 고환율 ‘대한민국 최고의 도서관’이라 자부해왔다. “제 전공 관련 책이 참 귀했습니다. 힘들게 모았더니 국내에서 찾기 희귀한 것도 모였고 외국 연구자들도 탐낼 만한 것도 쌓였습니다. 정확히 세기는 힘들어도 모두 1만 권은 충분히 넘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중 진화와 관련된 양질의 책을 고르고 골라 아낌없이 이 도서관에 중앙사거리 기증했다. 누구라도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책부터 전공자를 위한 책, 구하기 힘든 희귀한 책까지 이용자들의 다양한 눈높이를 고려했다. “진화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가장 다양하게 모아놓은 곳이 강동숲속도서관일 겁니다.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진화의 세계에 쉽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는 진화학은 더는 생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노벨 예금담보대출 경제학상 수상자 중 상당수가 진화경제학자일 정도로 경제, 사회, 철학 등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가 강동숲속도서관은 물론, 강동구와 특별히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퇴임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책 기증 의사를 주변 몇 사람에게 알렸는데, 과학 특화도서관 개장을 준비하던 강동숲속도서관이 그 소식을 듣고 하는데 요청하면서 기증이 성사됐다. 그는 오는 8월 퇴임 뒤 둥지를 트게 될 수유리 크리스챤아카데미에도 다른 주제의 책들을 따로 추려 기증할 계획이다. 평소 연구실 책을 학생들이 빌려가 반납하지 않아도 ‘필요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며 책을 보내는 것에 미련을 갖지 않던 최 교수였지만, 지난달 도서관 직원들이 책을 실어가자 허전함을 숨길 수 없었다고 했다. “미리 제가 분류작업을 해뒀던 덕분에 1200권의 책을 순식간에 실어갔죠. 텅 빈 서가를 보니 마음 한쪽이 허전했어요. 평생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책을 이제 강동숲속도서관에 가야 열람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게 됐으니 보람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읽고 소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도서관도 만들어봤고 출판조직을 만들어 책도 펴냈으니 책에 대해서 두루 아는 편이다. 그가 2013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뒤의 일이다. “원장으로 부임해보니 1층 로비가 널찍한데 텅 비어 있더군요. 건물에 들어오는 들뜬 아이들이 웃고 떠들다보니 때로 지나친 소음을 유발해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높았습니다. 빈 공간에 도서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 서가를 들이고 생태 관련 책을 꽂아 ‘어린이 생태글방’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건물을 오가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을 읽으며 궁금증도 해결하더군요. 아이들도 차분해져 지나친 소음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됐습니다.” 그는 이어 생태 관련 책이 부족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부를 만들어 영유아부터 학생, 일반인, 전문가를 위한 다양한 책을 펴내는 것은 물론 전자책(e북), 오디오북, 증강현실(AR) 콘텐츠와 함께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콘텐츠 제작도 수행하도록 했다. 이렇게 국립생태원이 출판한 책이 수백 권에 달한다. 그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조용히 읽는 수동적인 장소가 아니라 궁금증을 해결하고 삶의 지혜를 얻는 능동적인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자연스럽게 책과 놀고, 질문하며, 스스로 탐구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도서관은 엄숙한 공간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아이들이 뛰놀고, 소리 내 책을 읽고, 자유롭게 탐색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라도 쉽게 도서관에 드나들 수 있도록 접근성이 더 좋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동네 도서관이 더욱 많아져야 하고요. 서울의 인구 대비 도서관 사서 인력은 적고 1인당 업무량이 무척 많다고 알고 있는데 도서관이 많아져야 이것도 개선됩니다. 도서관이 더욱 많아져야 위기의 출판업계에 돌파구도 마련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유학 시절 아이와 방문하던 동네 도서관에 대한 경험을 들려줬다. 도서 구입 신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 뒤 한국으로 되돌아온 그에게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편지가 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출국 뒤 주소를 수소문해 편지를 보낼 정도로 도서관 직원들이 방문자들에게 세세하게 신경 쓸 여유가 있는 거죠.” 최 교수는 강동숲속도서관 개관을 기념해 지난달 23일 ‘알면 사랑한다’를 주제로 특강을 한 데 이어 앞으로도 특강 기회를 꾸준히 마련해 홍보대사로서 이 도서관을 알려나갈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에 인공지능(AI)이 핵심 내용을 얼마든지 요약해주는 시대에 책 읽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필요에 따라 AI의 요약만 읽는 방법, 책을 읽더라도 필요한 부분만 읽는 방법도 병행해야 하겠지만 저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명문대는 몇백 년째 학생들이 책을 진짜 꼼꼼하게 읽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들만이 ‘정보 취득’에 그치지 않고 ‘느낌의 힘’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전체 읽기는 AI 시대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할 힘을 키워 어떤 상황에도 맞설 수 있도록 하는 기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