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7-2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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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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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아이티(IT) 기업의 과장으로 한 브랜드를 책임지게 된 박세연씨는 외주를 주던 매뉴얼 번역을 직접 하기로 했다. 외주 번역은 속도도 느리고 전문 기술용어의 오역도 잦아서였다. 그는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며 ‘바른번역 아카데미’에 등록해 번역을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주말에도 출근해 번역을 이어나갔다. 직장인이라면 짜증 날 법한 주말 출근이었지만, 이상하게 혼자서 번역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안온하고 좋았단다. 직장 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일에 지쳐갔을 때, 사표를 내고 번역가에 도전하게 된 배경이다.
그가 처음 번역한 책은 ‘왜 sc제일은행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였다. 2008년 말 사표를 쓰자마자 바른번역 아카데미 쪽에서 의뢰가 온 책이었다. “6개월에 걸친 작업이었지만, 번역을 맡겨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일했죠.” 이후로 한해도 쉬지 않고 이어진 번역서는 조만간 100번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아이티 업계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경제·비즈 비과세 복리적금 니스·자기계발 서적들을 많이 번역했지만, ‘번역가 박세연’의 이름을 알린 것은 묵직한 인문서들이다. 2012년에 출간돼 한국 사회에 ‘죽음 신드롬’을 일으키며 25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2년 전 1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7년 전 출간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지난해 계엄 사태 이후 ‘역주행 신화’를 쓰며 28쇄나 기록했고 한국은행 업무 , 지난해 출간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10쇄를 넘겼다.
그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그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는 책이다. “담당 편집자가 굉장히 열정적이었어요. 책이 번역되기 전, 최장집 교수가 원서를 가지고 3회에 걸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편집자와 그 강의도 함께 듣고, 번역하는 내내 용어 하 대출사금융 나하나까지 의견을 나누며 작업했어요. 책 내용도 훌륭한데다 공을 많이 들인 책이라 잘 팔릴 줄 알았는데 출간된 2018년에는 큰 반응이 없어서 안타까웠죠. 지금은 여기저기서 ‘책 잘 읽었다’고 연락이 와서 기쁩니다.”
출판사들이 그에게 인문서를 믿고 맡기는 이유는 철학도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이과 출신으로 서울대 원예학과에 다니던 그 개인회생수임료 는 90년대 초반 대학 선배들이 건네준 ‘공산당 선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단다. 그 충격은 유물론을 거쳐 독일 철학까지 파고들어가게 만들었고, ‘내가 지금 원예학과에서 유기화학 같은 걸 배울 때가 아니라 진짜 공부인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만들었다.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자퇴한 뒤 다시 대입 시험을 치르고 고려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늦깎이 학부생으로 생계와 학업을 동시에 이어가느라 힘들었지만 철학 공부는 즐거웠죠.”
회사에 다닐 때 비하면야 경제적 수입은 현저히 줄었지만, 지난 17년간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번역을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때 ‘이렇게 벌어서 어떻게 먹고살지?’라는 ‘현타’가 왔고 때마침 아이티 업계에서 고연봉으로 복귀 제안을 했지만, 출근 직전에 ‘그래도 번역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접었단다. 행여 번역가로 자리 잡지 못할까 봐 준비해 놓았던 ‘플랜 비(B)’ ‘플랜 시(C)’도 취미로만 남게 됐다. 플랜 비는 도예가였고, 플랜 시는 와인 소믈리에였다. 도자기·와인·사진·오디오·살사 댄스 등 각종 ‘취미 부자’인 그가 요즘에 꽂혀 있는 건 ‘달리기’다.
“달리기와 번역은 굉장히 공통점이 많아요. 정말 힘들지만 어느 순간 하이(high·고양감 또는 행복감)가 오죠. 뇌에서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중추는 같은 곳이라고 하잖아요. 흔히 고통과 쾌락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걸로 아는데, 저는 힘든 것과 재밌는 것은 같이 가는 거라고 봐요.” 특히 번역을 하다가 막힌 대목은 달리기한 뒤에 샤워하면서 뚫린 적이 많단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날씨를 체크해 먼저 달릴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맞춰 식사 시간과 번역 일정을 조율한다.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과학책에 몰두해 있다. 뇌과학·진화생물학·양자역학·물리학까지 섭렵 중이다. “철학을 전공하고 아이티 업계에서 일한 탓에 과학 분야 의뢰가 거의 없는데, 저는 원래 이과 출신이라 수학을 가장 좋아했어요. 기회가 되면 과학책도 꼭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그는 한때 번역가들이 함께 사무실을 쓰면서 고민과 정보도 나누던 공동체 ‘번역인’을 운영한 바 있다. 먼 훗날에는 제주도에 ‘번역가 카페’를 운영하고픈 꿈을 품고 있다. “마음 한구석엔 늘 번역가 공동체에 대한 바람이 있거든요. 제주도에 오디오도 근사하게 갖춘 카페를 차려서 번역가들이 종일 머물며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상상만으로도 많은 번역가들이 설렐 이야기였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이런 책들을 옮겼어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두 저자가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쓴 책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들은 세계 각국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극단적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선출되고, 또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분석한다. 박 번역가는 “한국의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놀라운 대목들이 있다”고 극찬했다.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2018)
죽음이란 무엇인가(10주년 기념판)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로 꼽히는 예일대 철학과 교수 셸리 케이건의 ‘죽음’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플라톤·에피쿠로스·데카르트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넘나들며 오직 이성과 논리를 통해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친다. 박 번역가는 “동양과 다른 서양 철학의 죽음에 대한 사유 방식을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셸리 케이건, 웅진지식하우스(2023, 초판 2012)
더 나은 세상
동물에게도 복지가 필요한지? 범죄자에게 관용은 어디까지인지?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결정해도 되는지? 실천윤리학의 거장이 83가지 윤리적 사안의 찬·반양론을 살펴보며 최선의 해법을 고찰한다. 박 번역가는 “저자의 공감능력이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를 넘어서 동물과 생선에까지 확장된다”며 “지식인이 자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평했다.
피터 싱어, 예문아카이브(2017)
페이머스: 왜 그들만 유명할까
성공과 인기, 명성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비슷한 재능과 노력에도 왜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기억될까? 다양한 사례를 토대로 성공은 실력 같은 내적 가치보다 외적 상황과 운, 시대정신에 의존한다는 페이머스 법칙을 알려준다. 박 번역가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가 쓴 책으로 최근 번역한 책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추천했다.
캐스 선스타인, 한국경제신문(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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